법이 없던 세상에서 법이 탄생한 날 — 함무라비와 바빌로니아가 남긴 것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 말을 처음 들으면 잔인하게 느껴진다. 네가 나에게 한 만큼 나도 너에게 한다. 복수를 허락하는 원칙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원칙이 생기기 전을 생각해보면 다르게 읽힌다. 법이 없던 세상에서는 누군가에게 해를 입으면 씨족이 나서서 복수했다. 한 사람이 다친 것이 두 씨족 간의 전쟁이 되었다. 피해 정도와 무관하게 분노가 클수록 보복이 커졌다. 눈에는 눈이라는 원칙은 그 무한한 보복의 사슬에 한계를 긋는 것이었다. 딱 그만큼만. 그 이상은 안 된다.
3700년 전 바빌로니아에서 생겨난 이 법전이 오늘날까지 이야기되는 건, 그것이 단순한 규칙 모음이 아니라 인간이 함께 사는 방식을 정의하려는 최초의 진지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바빌론은 어떻게 작은 마을에서 대국이 되었나
기원전 2000년 무렵, 메소포타미아는 혼란 그 자체였다. 수메르 문명이 엘람의 침략으로 무너졌고, 여러 세력이 땅을 두고 다투었다. 그 시기 아모리인들이 작은 마을 바빌론을 이루었다. 당시 주변 강대국들에 비하면 변방의 작은 도시였다.
함무라비가 즉위한 건 기원전 1792년이었다. 그때 그는 강력한 나라를 물려받은 게 아니었다. 사방이 강한 세력으로 둘러싸인 작은 왕국이었다.
그는 무력보다 외교를 먼저 썼다. 동맹을 맺고, 내부를 정비하고, 방어 시설과 관개 시설을 쌓았다. 적이 약해지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재위 26년경부터 본격적으로 팽창했다. 동쪽 엘람을 막아내고, 라르사를 점령하고, 북쪽으로 나아가 아시리아까지 굴복시켰다. 메소포타미아 전역이 바빌로니아가 되었다.
그런데 정복이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진짜 문제가 거기서 시작되었다. 서로 다른 역사와 언어와 신화를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것. 힘으로 정복했어도 통치는 다른 문제였다.
법 이전에 신화가 있었다
함무라비가 택한 방법 중 하나가 신화의 재편이었다. 바빌론의 신 마르두크는 원래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중심 인물이 아니었다. 변방의 지역 신이었다. 함무라비는 이 마르두크를 메소포타미아 최고신으로 올려놓았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 정책이 아니었다. 바빌로니아의 왕은 마르두크의 대리자였다. 마르두크가 최고신이 되면, 그 대리자인 왕의 권위도 함께 올라간다.
이 맥락에서 나온 것이 에누마 엘리시다. 바빌로니아 창조 신화로, 원시 바다의 신들에게서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이야기한다. 그 중심에 마르두크가 있다. 혼돈을 가져온 티아마트를 마르두크가 물리치고, 그 시체로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인간을 창조한다.
신화는 정치다. 누가 최고신이냐가 누구의 통치가 정당한가와 연결된다. 함무라비는 그것을 알았다.
길가메시가 묻는 것
바빌로니아 시대에 문학적으로 완성된 길가메시 서사시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한다.
우르크의 왕 길가메시는 강력하지만 폭군이었다. 신들이 그의 대적자로 야수 엔키두를 만들어 보낸다. 둘은 싸우다가 절친이 된다. 함께 괴물을 처치하고, 여신의 유혹을 거절하고, 하늘의 황소까지 죽인다.
그러다 엔키두가 죽는다. 길가메시가 처음으로 죽음을 마주한다.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영생을 찾아 떠난다. 끝없이 헤매다 홍수에서 살아남아 영생을 얻은 우투나피슈팀을 만난다. 영생의 풀을 찾아내지만, 뱀이 가져가버린다.
결말은 허무하다. 영생은 없다.
그런데 이 허무한 결말이 오히려 이야기를 오래 살아남게 했다. 죽음 앞의 인간이 무엇을 하는가. 영생을 찾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지만 그것은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서사시 중간에 술집 여주인이 길가메시에게 하는 말이 있다. 신들이 인간에게 영생 대신 죽음을 줬을 때, 그들은 삶을 손에 쥐게 했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라고.
3700년 전의 카르페디엠이다.
함무라비 법전이 말하는 것
정복을 통해 통일한 왕국을 유지하려면 무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각 지역마다 다른 규칙이 있고, 다른 관습이 있고, 다른 재판 방식이 있다. 함무라비는 사법권을 중앙에 모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가 282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함무라비 법전이다. 각지에 지방 법원을 세우고 사법관을 파견했으며, 법전을 통해 왕이 직접 재판하는 효과를 냈다.
법전의 서문이 인상적이다. 신이 함무라비에게 정의를 지상에 퍼뜨리고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지 못하게 하는 임무를 주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피부색이 없는 여자아이와 과부에게 정의를 가져다주기 위해 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3700년 전 왕국의 법전 서문에 사회적 약자 보호가 적혀 있다는 것. 이것이 이 법전을 단순한 통치 도구 이상으로 만드는 부분이다.
물론 법전 안의 내용이 지금 기준으로 보면 불평등하다. 동해보복 원칙이 계급과 성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었다. 귀족이 평민에게 한 행동과 평민이 귀족에게 한 행동의 처벌이 달랐다. 노예는 사람이기도 했고 재산이기도 했다. 이것들은 당시 사회 구조의 반영이었고, 지금 시각으로 정의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법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왕도 법 위에 서지 않겠다는 선언, 판결의 기준을 문자로 공개한다는 것, 피해의 정도에 따라 보상을 계산할 수 있게 한다는 것. 이것들이 쌓여서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법치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사람들이 자주 오해하는 것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잔인한 원칙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첫 번째 오해다. 이 원칙이 생기기 전의 세상이 더 잔인했다. 씨족 간의 무한 보복, 힘이 센 쪽이 더 많이 가져가는 구조. 탈리오 법칙은 복수의 허용이 아니라 복수의 한계를 정한 것이었다.
두 번째 오해는 함무라비 법전이 세계 최초의 법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는 함무라비 이전에도 성문법이 있었다. 우르남무 법전이 약 100년 앞선다. 하지만 함무라비 법전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가장 체계적으로 정비된 것은 맞다. 최초라는 수식보다 가장 영향력 있는 고대 법전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세 번째 오해는 신화를 단순한 옛날 이야기로 보는 것이다. 에누마 엘리시나 길가메시 서사시는 당시 사람들에게 세계관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죽음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 질문들에 대한 당시의 답이 신화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현실에서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바빌로니아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생각은 의외로 단순하지 않다.
법이 왜 필요한가. 강한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하는 세상이 아니라, 규칙이 있는 세상이 왜 더 나은가. 우리는 그 답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 당연함이 만들어지기까지 수천 년이 걸렸다.
함무라비 법전 서문에 적힌 말이 지금도 선명하게 들린다.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 문장이 3700년 전에 쓰였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이 목표가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 함께 생각된다.
길가메시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영생을 찾아 헤매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왜 수천 년 동안 전해졌을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지금 이 순간을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이 계속 살아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이야기가 낡지 않는 건, 그 안에 담긴 질문이 시대를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 내 경험
박물관에서 함무라비 법전 기념비 사진을 처음 봤을 때 그냥 지나쳤던 기억이 있다. 오래된 돌기둥이려니 했다. 나중에 그 안에 쓰인 내용을 공부하면서 다시 그 사진을 보니 느낌이 달랐다. 3700년 전에 쓰인 문장들이 지금 읽어도 이해가 된다는 것, 상거래 계약서 관련 조항이나 임차인 유지 보수 의무 같은 내용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인간이 모여 사는 방식에는 시대가 바뀌어도 비슷한 문제들이 반복된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다.
🔹 내 생각
함무라비 법전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은 건 맺음말 부분이다. 후대 군주들에게 이 법을 바꾸거나 폐기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는 내용. 자신이 만든 법이 자신보다 오래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바빌로니아 자체가 엘람에게 멸망했다. 함무라비가 그토록 공들여 세운 나라가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법전과 신화와 언어는 살아남아 이후 문명들로 이어졌다. 나라는 멸망했지만 그가 만든 것들이 계속 살아서 영향을 미쳤다.
어떤 것이 더 오래 지속되는가. 힘으로 세운 것인가, 아니면 기록으로 남긴 것인가. 바빌로니아의 이야기가 그 질문에 하나의 답을 보여주는 것 같다.
🔹 FAQ
Q. 함무라비 법전이 세계 최초의 법전인가요?
정확하게는
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형태의 고대 법전입니다. 함무라비 이전에도 우르남무 법전
등이 있었습니다. 다만 함무라비 법전이 가장 체계적으로 정비되어 있고 가장 잘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영향력 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Q.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은 왜 잔인하지 않다고 보는 건가요?
이 원칙이 생기기 전에는 피해를 입은 씨족이 복수의 크기를 스스로
결정했습니다. 힘이 센 쪽이 더 크게 보복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이것이 씨족 간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탈리오 법칙은 복수를 허용한 것이 아니라 복수의 한계를
피해 정도에 맞게 제한한 것입니다. 공권력이 처벌을 독점하게 된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Q. 길가메시 서사시가 성경의 홍수 이야기와 비슷하다는데, 어떤
관계인가요?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대홍수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들이 홍수를 내리고
우투나피슈팀이 배를 만들어 살아남는다는 구조가 노아의 방주와 유사합니다.
바빌로니아 문명이 이후 이스라엘과 주변 문명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신화적
모티브가 전해진 것으로 해석됩니다.
Q. 마르두크를 최고신으로 올린 것이 왜 정치적인 행위였나요?
함무라비가 정복한 지역들은 각자 다른 신을 중심으로 한 신화 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빌론의 신 마르두크를 최고신으로 세우면, 바빌로니아 왕이
그 대리자가 됩니다. 왕의 권위가 신화적 정당성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았던 고대 사회에서 통치의 핵심 수단이었습니다.
Q. 함무라비 이후 바빌로니아는 어떻게 되었나요?
함무라비 사후 바빌로니아는 점차 약해졌고 결국 엘람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하지만 바빌로니아의 언어인 아카드어, 법체계, 신화는 이후
아시리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문명으로 이어졌습니다. 나라는 사라졌지만
문명의 유산은 살아남아 서양 문명의 기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Q. 함무라비 법전에서 여성은 어떻게 다루어졌나요?
법전에는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는 조항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계급과
성별에 따른 차별이 존재했습니다. 귀족 여성과 평민 여성, 노예 여성에 대한
처우가 달랐습니다. 서문에 사회적 약자 보호를 명시했음에도 실제 조항에서는
당시의 계층 구조가 반영되어 있어 지금 기준으로 완전히 평등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