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읽는 순자 – 배움·수신·리더십을 생각하다

 

오십에 읽는 순자 – 배움·수신·리더십을 생각하다

🏷️ 순자, 성악설, 권학, 수신, 리더십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사람에게 실망하는 일이 반복되면, 문제가 세상에 있는 건지 자신에게 있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저도 그런 시기에 순자(荀子)를 처음 제대로 읽었습니다. 맹자와 비교하며 읽었는데, 같은 유가(儒家) 계열인데 인간 본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 차이가 오히려 오십 이후의 삶을 설명하는 언어가 되어줬습니다.

순자 와 제자  사진


배움 — 멈추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직장을 다닐 때는 배움이 외부에서 주어졌습니다. 사수가 가르쳐줬고, 회사 교육이 있었고, 자격증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구조가 사라지자 배움도 함께 멈췄습니다. 그게 능력의 한계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걸 순자를 읽으면서 처음 제대로 인식했습니다. 순자는 권학(勸學)이라는 개념으로 배움의 필요성을 설파했습니다. 권학이란 말 그대로 배움을 권장하고 독려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담긴 논리가 단순한 격려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발돋움해서 보는 것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보는 것이 더 멀리 보인다고. 혼자 머릿속으로 아무리 열심히 궁리해도, 좋은 스승과 좋은 환경에서 배우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겁니다.

저는 이 비유에서 "혼자 생각하는 것의 한계"를 생각했습니다. 오십이 넘으면 자기 경험이 쌓이고, 그 경험이 오히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착각이 배움을 멈추게 만드는 겁니다. 순자가 군자왈 학불가이이(君子曰 學不可以已), 즉 군자는 배움을 멈출 수 없다고 한 말이 이 나이에 더 날카롭게 들렸습니다. 배움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순자가 제시한 방향이 도움이 됩니다. 순자는 수신(修身), 즉 자기 자신을 갈고닦는 것에서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거창한 배움이 아니라, 오늘의 자신을 어제의 자신보다 조금 더 바로잡는 것부터입니다.

수신 — 남 탓을 멈추면 보이는 것들

솔직히 말하면, 젊었을 때 저는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 꽤 에너지를 많이 썼습니다. 상대방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분석하는 데 시간을 들이면서, 정작 제 행동은 잘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순자를 읽으면서 그게 얼마나 비효율적인 방식이었는지를 새삼 실감했습니다. 순자는 수신(修身)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몸이 바르면 그림자가 바르고, 소리가 바르면 울림이 바르다고. 내가 먼저 바르면 주변이 따라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수신이란 자기 자신의 언행과 태도를 스스로 바로잡는 수양의 과정을 말합니다. 단순히 착하게 살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행동이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이 다시 나를 만든다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순자는 과실(過失)에 대해 냉정하게 말합니다. 과실이란 실수나 잘못을 뜻합니다. 과실을 발견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은 두 번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처음 잘못은 몰라서 한 실수일 수 있지만, 알고도 고치지 않으면 그건 의도적인 선택이 된다는 논리입니다. 이 말이 제가 오랫동안 합리화해온 몇 가지 행동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불편한 독서였습니다. 성악설(性惡說)이 주는 의외의 위로도 있었습니다. 성악설이란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고 욕망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순자의 인간관입니다. 처음엔 부정적으로 들리지만, 저는 읽으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인간이 본래 선하다고 믿으면, 다른 사람의 나쁜 행동이 배신처럼 느껴집니다. 반면 인간이 본래 욕망을 가진 존재라고 보면, 나쁜 행동에 충격이 덜하고 오히려 좋은 행동을 했을 때 더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기대치를 현실적으로 설정하는 일, 그것만으로도 관계가 덜 피로해집니다.

다만 성악설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모든 사람에 대한 냉소가 쌓일 위험도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순자 자신도 교육을 통해 인간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성악설은 인간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인간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역설적인 출발점입니다.

수신을 실천하는 데 있어 순자가 제시한 기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자신의 과실을 발견했을 때 즉시 인정하고 고치는 것을 우선한다
  2.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에게 같은 기준을 먼저 적용한다
  3.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한다

이 세 가지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압니다. 저도 여전히 잘 안 됩니다. 그런데 기준이라도 분명히 알고 있으면, 어긋났을 때 스스로 알아채는 속도는 빨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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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 아랫사람이 배를 뒤집는다

오십이 지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를 이끄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조직에서도,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리에서 가장 흔하게 하는 실수가 뭔지 순자가 꽤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순자는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개념으로 리더십의 본질을 설명했습니다. 군주민수란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라는 뜻입니다. 물이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아랫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리더는 결국 그 아랫사람들에 의해 무너진다는 경고입니다. 2,300년 전 말인데, 현대 조직에서도 반복해서 목격하는 장면입니다.

상벌(賞罰)의 기준에 대한 순자의 조언도 실제로 체감되는 이야기입니다. 상벌이란 잘한 것에 상을 주고 잘못한 것에 벌을 주는 규율 체계를 뜻합니다. 기준 없이 상벌이 이루어지면 아랫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조직에서도 리더의 기분에 따라 상벌이 달라지는 환경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지 봤습니다. 반대로, 기준이 분명한 리더 밑에서는 설령 엄격하더라도 사람들이 따라가는 방향을 알 수 있었습니다. 순자의 리더십 사상이 현대에 그대로 적용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위계 중심의 사고가 전제되어 있어서, 수평적인 조직 문화에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핵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랫사람을 자원이 아닌 사람으로 대하는 것, 그리고 기준이 일관되어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는 어떤 조직 형태에도 통합니다.

순자를 읽고 나서 당장 무언가가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에게 실망하는 일이 줄었습니다. 기대치가 달라진 겁니다. 순자는 인간에 대한 낭만적인 기대 대신, 현실적인 눈으로 사람을 보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오십 이후의 삶에서 그게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능력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했습니다. 순자가 불편하게 읽힌다면, 오히려 그 불편함이 읽어야 할 이유입니다.


참고: https://www.aladin.co.kr
https://www.unesco.org/en/lifelong-learning
https://www.krivet.re.kr

📌 생각 한 줄

"순자는 인간에 대한 낭만적 기대 대신 현실적인 눈을 제시했다. 성악설은 인간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출발점이었다. 수신은 남 탓을 멈추고 자신을 먼저 보는 훈련이었고, 군주민수는 아랫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라는 경고였다. 오십 이후, 순자가 불편하게 읽힌다면 그 불편함이 읽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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