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몽테뉴는 왜 스스로를 연구했을까?
― 『수상록』으로 배우는 자기 성찰
나는 나 자신을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 알고, 중요한 순간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나온 일을 천천히 돌아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예전에는 옳다고 확신했던 생각을 지금은 다르게 보기도 하고,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던 선택을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있을 때도 있다.
몸이 지치면 마음까지 약해지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판단이 흔들리기도 한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의 나와 손해를 보았을 때의 나도 생각보다 다르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나 자신을 알고 있는 걸까?
16세기 프랑스의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는 이 질문을 오랫동안 붙잡았던 사람이다.
그는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인간은 반드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완성된 정답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대신 자신이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한 인간을 바라보았다.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몽테뉴가 자신을 연구한 것은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에서 오래 관찰할 수 있는 인간이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고 『수상록』을 바라보니 책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한 사람의 사적인 고백을 모은 책이라기보다 한 인간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관찰하는 긴 실험처럼 느껴졌다.
몽테뉴는 왜 37세에 자신의 서재로 물러났을까
몽테뉴는 1533년 프랑스 남서부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비교적 부유했고, 아버지는 아들의 교육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어린 몽테뉴가 라틴어를 책 속의 죽은 언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언어처럼 익히도록 가정에서부터 특별한 교육 환경을 마련했다.
이후 몽테뉴는 공직 세계에 들어갔다. 다만 여기에서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그가 어디에서 법학을 공부했는지, 심지어 정식 법학 교육을 실제로 받았는지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아버지가 페리괴(Périgueux)의 법원 직책을 마련해 주었고, 몽테뉴가 이후 공직과 법·행정의 세계를 경험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그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에티엔 드 라 보에시(Étienne de La Boétie)를 만났다.
두 사람은 깊은 우정을 나누었지만 라 보에시는 1563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몽테뉴에게 커다란 상실이었다.
1571년, 37세의 몽테뉴는 활동적인 공직생활에서 물러나 가문의 성으로 돌아갔다.
성의 탑에는 그의 서재가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책을 읽고 생각하며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글로 적기 시작했다. 서재의 나무 들보에는 성서와 고대 저자들에게서 가져온 여러 문구도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몽테뉴는 이후 긴 여행을 떠났고, 보르도 시장으로 선출되어 재선까지 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이 프랑스를 뒤흔들던 종교전쟁의 시대에도 그는 현실 세계와 계속 관계를 맺었다.
따라서 『수상록』은 세상을 피해 숨어버린 사람의 일기라기보다, 현실을 경험한 사람이 잠시 거리를 확보하고 자신의 판단을 다시 시험하기 시작한 기록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ESSAIS
『수상록』은 완성된 정답을 적은 책이 아니었다
우리가 『수상록』이라고 부르는 책의 프랑스어 제목은 Essais다.
이 말에는 시도하고 시험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오늘날 하나의 글쓰기 장르가 된 ‘에세이(essay)’라는 이름도 몽테뉴의 작업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이 제목을 알고 나면 그의 글이 왜 그렇게 자유롭게 움직이는지 이해하기 쉬워진다.
몽테뉴는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뒤 정답을 발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 가지 문제를 생각하다가 고대 저자의 이야기를 꺼내고, 자신의 경험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자신의 판단을 의심한다.
『수상록』은 1580년 처음 출간되었을 때 제1권과 제2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588년에는 제3권을 포함한 중요한 증보판이 나왔고, 몽테뉴는 그 뒤에도 생애 마지막까지 자신의 글에 내용을 계속 덧붙였다. 1595년에는 그의 사후 판본이 출간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수정 방식이다.
그는 과거의 생각을 모조리 지워 하나의 매끈한 철학 체계를 만드는 것보다 기존 글 위에 새로운 생각을 더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했다.
그래서 『수상록』을 읽으면 완성된 철학자의 목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인간이 시간과 경험에 따라 움직이는 흔적도 함께 보인다.
왜 하필 자기 자신이었을까
『수상록』의 시작에서부터 몽테뉴는 독자에게 자기 자신이 이 책의 소재라고 밝힌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자기 생각과 습관, 몸과 감정에 대해 그렇게 오랫동안 글을 쓴다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수상록』에서 몽테뉴가 보여주는 모습은 자기 자랑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
그는 기억력의 한계도 이야기하고, 두려움과 습관을 살피며, 몸과 질병, 교육, 우정, 분노, 후회, 죽음까지 자신의 경험 속으로 끌어들인다.
약점도 관찰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이 특히 흥미로웠다.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때 가능하면 일관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괜찮았던 선택은 기억하고, 부끄러운 선택에는 이유를 붙이기도 한다.
몽테뉴의 글쓰기는 조금 달랐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확정하기보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관찰하는 쪽에 가까웠다.
자신을 오래 들여다보니 인간은 생각보다 잘 변했다
우리는 자신에게 고정된 성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나는 원래 신중한 사람, 나는 원래 용감한 사람, 나는 원래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실제 생활에서는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튀어나온다.
건강할 때의 나와 아플 때의 내가 다르고, 칭찬을 받을 때와 모욕을 당했을 때의 나도 다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의 판단과 불안할 때의 판단이 언제나 같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몽테뉴가 자신의 경험을 끊임없이 관찰하면서 마주한 것도 이런 인간의 변화와 불안정성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 모순을 모두 제거해서 완벽하게 일관된 인간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짜 나’를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부분에서 몽테뉴가 유난히 현대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너무 빨리 이름표를 붙인다. 하지만 그 이름표 때문에 오히려 지금 실제로 변하고 있는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의 자기계발과 몽테뉴식 자기 성찰은 무엇이 다를까
| 질문 | 흔한 자기계발식 접근 | 몽테뉴식 성찰 |
|---|---|---|
| 목표 | 더 나은 내가 되기 | 지금의 나와 판단을 관찰하기 |
| 약점 | 고쳐야 할 결함 |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 |
| 모순 | 없애야 할 문제 | 관찰해야 할 인간의 모습 |
| 지식 | 많이 알수록 유리하다 | 지식보다 판단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중요하다 |
| 결론 | 정답을 찾아 적용한다 | 판단을 계속 시험하고 수정한다 |
※ ‘흔한 자기계발식 접근’은 몽테뉴의 사상을 오늘의 독자에게 설명하기 위해 필자가 단순화해 만든 비교이며, 몽테뉴가 현대 자기계발서를 직접 비판했다는 뜻은 아니다.
QUE SAIS-JE?
“나는 무엇을 아는가?” ― 의심은 생각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었다
몽테뉴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Que sais-je? ― “나는 무엇을 아는가?”
몽테뉴는 고대 회의주의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특히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저작은 그의 사유에 중요한 자극을 주었다.
1576년 무렵 몽테뉴가 자신의 메달에 판단의 유보를 나타내는 그리스어 표현과 함께 ‘Que sais-je?’라는 문구를 새겼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을 “인간은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 생각해봐야 소용없다”는 주장으로 읽으면 몽테뉴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게 된다.
그의 회의는 생각을 포기하는 것보다 자신의 판단이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태도에 더 가깝다.
한쪽 의견만 붙잡는 대신 다른 견해를 살펴보고, 자신의 판단을 다시 시험한다.
나는 이 태도가 자기 성찰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완전히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순간, 오히려 자신을 관찰할 이유가 사라진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끝내는 대신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가?”라고 한 번 더 묻는 것.
그 질문을 남겨두는 것이 몽테뉴에게는 약함이 아니라 자유로운 판단을 지키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책을 많이 읽는 것과 잘 판단하는 것은 같은 일일까
몽테뉴의 서재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규모였고, 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저자들을 폭넓게 읽었다. 『수상록』에도 고전 작가들의 생각과 사례가 수없이 등장한다.
그런데 몽테뉴는 박식함 자체를 철학의 최종 목표로 삼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지식을 얼마나 많이 기억하느냐보다 그것을 자신의 판단으로 어떻게 소화하느냐였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요즘의 생활을 떠올렸다.
지금은 몇 초만 검색해도 엄청난 양의 정보를 만날 수 있다. 뉴스를 보고, 영상을 보고, 다른 사람의 분석을 읽는다.
그런데 많이 봤다는 사실과 내가 제대로 판단했다는 사실은 전혀 같은 말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의견을 접하다 보면 어디까지가 내가 생각한 것이고 어디부터가 남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몽테뉴가 중요하게 본 것은
얼마나 많이 아느냐보다
빌려온 지식을 자기 판단으로 시험할 수 있느냐에 가까웠다.
자기 성찰은 자신을 칭찬하는 일도, 미워하는 일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라고 하면 두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하나는 자신을 지나치게 좋게 해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족한 점만 찾아내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다.
하지만 『수상록』을 읽으며 내가 느낀 자기 성찰은 둘 다 아니었다.
몽테뉴는 자신의 기억, 두려움, 습관, 몸, 판단의 흔들림까지 관찰하지만 약점을 발견할 때마다 자신을 처벌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결함을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그냥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한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의외로 어렵다.
내가 실수하면 상황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싶고, 남이 같은 실수를 하면 그 사람의 성격 때문이라고 판단하기 쉽다.
그래서 나는 몽테뉴식 자기 성찰을 자신에게도 타인을 바라볼 때만큼 솔직해지는 연습으로 읽게 된다.
몸이 아픈데 생각만 멀쩡할 수 있을까
철학이라고 하면 정신과 이성을 먼저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수상록』에는 몸과 건강, 질병과 나이 듦, 죽음처럼 매우 현실적인 문제가 자주 등장한다.
몽테뉴 자신도 신장결석으로 고통을 겪었다. 1580년 시작한 이탈리아 여행에는 여러 목적이 있었지만, 온천을 찾아 결석으로 인한 고통을 완화하려는 목적도 중요했다.
여행 도중 그는 보르도 시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받았고, 결국 그 직책을 받아들였다. 이후 재선까지 했다.
이 사실은 몽테뉴를 단순한 은둔 철학자로 생각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는 책을 읽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몸이 아픈 사람이었고, 공직을 맡은 사람이었으며, 종교적 갈등으로 흔들리는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것이 『수상록』이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생각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하고 있는 몸과 삶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
내가 『수상록』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것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를 확정하는 일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의 성격과 장단점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것을 잘하며, 이런 것이 약하다고 정리하면 나를 잘 아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몽테뉴를 따라가다 보면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은 계속 변한다.
경험이 쌓이면 판단이 달라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뀐다. 돈을 잃거나 병을 앓거나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이전에 몰랐던 자기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를 안다는 것은 한 번의 검사나 몇 개의 단어로 자신을 규정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늘의 나를 관찰하고, 어제와 달라진 부분을 인정하고, 지금의 판단 역시 틀릴 가능성을 남겨두는 일.
“나는 어떤 사람인가?”보다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더 솔직할 때가 있다.
나는 이것이 몽테뉴가 자신에 대해 계속 쓸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완성된 인간이라면 더 이상 기록할 것이 없겠지만, 변화하는 인간에게는 계속 새로운 관찰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몽테뉴가 지금 살아 있다면 우리에게 무엇을 물었을까
몽테뉴가 살았던 16세기와 지금은 전혀 다른 시대다.
그러니 우리도 성의 탑에 서재를 만들고 고전을 읽으며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그의 철학을 흉내 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의 문제의식을 오늘의 생활에 가져오는 것은 가능하다.
오늘 내가 확신하고 있는 생각은 정말 사실인가, 아니면 오래 믿어서 사실처럼 느껴지는 것인가?
나는 같은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하게, 나 자신에게는 너그럽게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
몇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졌다면 그 변화를 실패가 아니라 경험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내가 ‘내 생각’이라고 믿는 것 가운데 사실은 다른 사람의 판단을 그대로 빌려온 것은 얼마나 되는가?
이 질문들에 완벽한 답을 내놓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오히려 쉽게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자기 성찰이 시작될 수도 있다.
오늘의 생각 한 줄
나를 안다는 것은
나에 대한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나를 계속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수상록』을 읽기 전에 궁금한 것들
Q1. 미셸 드 몽테뉴는 누구인가요?
미셸 드 몽테뉴(1533~1592)는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이자 사상가다. 공직생활과 현실 정치도 경험했으며, 『수상록』을 통해 자신의 판단과 경험을 철학적 탐구의 재료로 삼았다.
Q2. 몽테뉴는 37세에 완전히 은퇴했나요?
1571년 활동적인 공직생활에서 물러나 가문의 성으로 돌아간 것은 맞지만 세상과 완전히 단절한 것은 아니다. 이후 여행을 했으며 보르도 시장으로 선출되어 재선까지 했다.
Q3. 몽테뉴가 법학을 공부했다는 것은 확실한가요?
확실하지 않다. 현대 연구에서도 몽테뉴가 어디에서 법학을 공부했는지, 실제로 정식 법학 교육을 받았는지를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렵다고 본다. 다만 그의 아버지가 페리괴의 법원 직책을 마련해 주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
Q4. 『수상록』은 언제 출간됐나요?
1580년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제1권과 제2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588년에는 제3권을 포함한 중요한 증보판이 출간되었고, 몽테뉴 사후인 1595년에도 중요한 판본이 나왔다.
Q5. 『수상록』은 자서전인가요?
자전적인 경험이 많이 들어 있지만 현대적인 의미의 연대기식 자서전과는 성격이 다르다. 몽테뉴는 자신의 생애를 순서대로 기록하기보다 경험과 생각을 이용해 자신의 판단과 인간의 삶을 탐구했다.
Q6. ‘Que sais-je?’는 무슨 뜻인가요?
프랑스어로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뜻이다. 몽테뉴의 회의적 태도를 상징하는 유명한 표현으로, 자신의 지식과 판단의 한계를 끊임없이 의식하는 태도와 연결된다.
Q7. 몽테뉴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주장했나요?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하기는 어렵다. 그의 회의는 모든 생각을 포기하자는 주장이라기보다 여러 의견을 검토하고 자신의 판단을 계속 시험하는 철학적 태도와 연결된다.
Q8. 몽테뉴는 왜 자기 자신을 그렇게 많이 기록했나요?
자신을 완성된 모범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관찰함으로써 인간의 변화와 한계, 습관과 판단을 탐구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Q9. 몽테뉴의 자기 성찰을 오늘날에도 활용할 수 있을까요?
몽테뉴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따라 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확신을 한 번 더 검토하고, 감정과 상황에 따라 판단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하며, 다른 사람에게서 빌려온 생각과 자신의 판단을 구분해보는 태도는 오늘날에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글을 마치며
몽테뉴는 자신을 연구했지만 결국 인간을 이야기했다
몽테뉴가 『수상록』의 중심에 놓은 사람은 왕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었다.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처음에는 이 선택이 지나치게 개인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장 오랫동안 관찰할 수 있는 인간 역시 자기 자신이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판단이 흔들리는지, 누구에게 화를 내는지, 몸이 아플 때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무엇을 후회하게 되는지.
이 모든 것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다.
몽테뉴는 그 한 사람을 오랫동안 관찰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은 특별한 몽테뉴만의 모습이 아니었다.
두려워하고, 모순되고, 확신했다가 의심하고, 몸의 영향을 받으며, 습관에 끌려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자기 자신을 오래 바라보았더니
그 끝에서 한 사람만 보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상록』의 자기 성찰을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지라는 말로 읽고 싶지 않다.
오히려 자기 자신조차 완전히 알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다른 사람을 너무 쉽게 판단하는 태도도 조금은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고, 내가 변할 수 있으며, 지금의 판단이 영원한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은 자신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조금 더 정확하게 바라보는 태도일 수 있다.
그래서 『수상록』을 덮고 나서
내게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기 전에
나 자신을 얼마나 오래 들여다보았는가?
참고 자료
Encyclopaedia Britannica
Michel de Montaigne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Michel-de-Montaign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Michel de Montaigne
https://plato.stanford.edu/entries/montaigne/
Michel de Montaigne
Essais ― 『수상록』
이 글은 몽테뉴의 『수상록』과 철학·전기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생애와 저술에 관한 사실은 확인 가능한 자료를 기준으로 서술했으며, 불확실한 학력과 전기적 사항은 확정적으로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자기계발, 정보 환경, 자기 성찰과 연결한 부분과 ‘오늘의 생각 한 줄’ 등은 몽테뉴의 문제의식을 오늘의 삶에 비추어 본 필자의 해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