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 골계열전 – 골계·순우곤·서문표

 

사마천 사기 골계열전 – 골계·순우곤·서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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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불편한 말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린 적, 한 번쯤 있지 않습니까? 저는 사마천사기 골계열전을 읽고 나서 그 고민이 사실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영웅과 전략가들의 이야기만 있을 줄 알았던 사기에, 웃음으로 권력자를 바꾼 사람들의 기록이 따로 묶여 있었습니다.

골계열전  장면  사진


골계(滑稽)란 무엇인가

골계열전을 처음 펼쳤을 때 제가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이 골계라는 단어의 뜻이었습니다. 골(滑)은 미끄럽다는 뜻이고, 계(稽)는 머무른다,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합치면 미끄럽게 생각을 움직인다는 의미가 됩니다. 딱딱한 직언(直言)이 아니라 비유와 웃음으로 우회해서 핵심을 찌르는 기술입니다. 직언이란 상대방의 잘못을 곧바로 지적하는 방식인데, 권력자 앞에서 이 방식은 목숨이 달린 도박이었습니다. 사마천은 골계열전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고 굽은 것이 능히 펴질 수 있으며 흐트러진 것이 바로잡힐 수 있는 것이 골계의 힘이라고요. 웃음이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세상을 바르게 하는 도구라는 선언입니다. 솔직히 처음 읽었을 때는 좀 과장된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뒤에 이어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사마천이 이 편을 사기에 포함시킨 이유를 생각해보면, 설득의 방식이 내용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리 옳은 말도 전달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골계는 그 전달의 기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술이 실제로 역사를 바꾼 사례들이 골계열전 안에 담겨 있습니다.

골계의 특징을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 비유와 수수께끼를 통해 상대가 스스로 답을 찾게 유도합니다.
  2. 웃음을 갑옷으로 삼아 권력자가 화를 내기 어렵게 만듭니다.
  3. 직언보다 저항이 적기 때문에 핵심이 더 깊이 전달됩니다.

순우곤과 술 한 잔의 진실

골계열전의 첫 번째 인물이 순우곤(淳于髡)입니다. 제나라 위왕 시절 사람으로, 외모는 볼품없었지만 기지와 말재주가 뛰어났습니다. 위왕은 즉위 초기에 방탕했습니다. 밤새 술을 마시고 정사를 신하들에게 맡겼는데, 직언을 해도 듣지 않는 왕이었습니다. 순우곤은 수수께끼를 꺼냈습니다. 나라 안에 큰 새가 있는데,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이 새가 어떤 새인지 아십니까. 위왕은 스스로 답했습니다. 한번 날면 하늘 높이 오르고, 한번 울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그 이후 위왕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순우곤의 이야기 중에서 술에 관한 대화가 더 인상 깊었습니다. 위왕이 물었습니다. 선생은 얼마나 마셔야 취하는가. 순우곤의 답이 걸작이었습니다. 한 말을 마셔도 취하고, 한 섬을 마셔도 취합니다. 위왕이 어리둥절해하자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대왕 앞에서는 두려워 한 말도 못 마시고 취하고, 친구들과 오래 만나면 다섯 말쯤 취하고, 남녀가 함께 어울리는 마을 잔치에서는 한 섬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고요.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주극즉란(酒極則亂), 즉 술이 극에 달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퍼진다는 것입니다. 주극즉란이란 지나침이 반드시 반전을 부른다는 자연의 이치를 담은 표현입니다. 제가 이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 말장난처럼 들렸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설명을 따라 읽으니 이게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밤새 방탕하게 지내는 왕에게 직접 "그러지 마십시오"라고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술의 이치를 이야기하면서 왕 스스로 연결하게 만든 것, 이것이 골계의 핵심이었습니다. 위왕은 이후 밤새 술 마시는 잔치를 멈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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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표가 미신을 끊어낸 방식

골계열전에서 서문표(西門豹)는 조금 다른 결의 인물입니다. 해학가라기보다는 단호한 행동으로 잘못된 관행을 깨뜨린 관리였습니다. 그는 위나라 문후 시절 업(鄴)이라는 지역의 수령으로 부임했는데, 당시 업에는 기이한 관행이 있었습니다. 하백(河伯), 즉 황하의 신에게 해마다 신부를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무당과 지역 유지들이 이 제의를 주관하면서 실제로는 가난한 집 아이들을 강에 던지고 돈을 착취하는 구조였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관행이었습니다.

서문표는 다음 제사에 참석하겠다고 했습니다. 제사날, 그는 바칠 신부를 살펴보더니 예쁘지 않다고 했습니다. 무당 할머니를 먼저 강에 보내 이 사실을 하백에게 알려달라며 실제로 무당을 던졌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답이 없다며 제자들도 던지고, 지역 유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수십 년간 계속된 미신과 착취가 한 번에 끊겼습니다. 처음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솔직히 잔인하다는 느낌이 먼저 왔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간 착취당해온 백성들의 시각으로 보면 다른 그림이 보였습니다. 말로는 바꿀 수 없는 오래된 관행을 행동으로 깨뜨린 것이었습니다. 서문표는 이후 관개 수로(灌漑水路)를 만들었는데, 관개 수로란 농업용 물을 땅으로 끌어들이는 인공 수로를 말합니다. 농지를 풍요롭게 하면서 업 지역을 실질적으로 바꾼 인물로 기록됩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서문표의 방식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합니다. 무당과 무녀들이 그 제도 안에서 어떤 위치였는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강에 던진 것이 너무 단순한 해결이었다는 비판도 가능하니까요.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방법이 늘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골계열전을 읽으면서 이 부분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웃음이 직언보다 더 날카로울 때

그렇다면 골계는 언제나 직언보다 우월한 방식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골계가 효과적인 설득의 도구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모든 상황에 맞는 건 아닙니다. 때로는 우회하지 않고 정면으로 말해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웃음으로 포장하는 것이 오히려 진실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간언(諫言)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지혜라는 말이 있습니다. 간언이란 윗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는 말을 뜻합니다. 골계를 쓸지, 직언을 할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골계보다 더 근본적인 역량일 수 있습니다. 순우곤이 위왕 앞에서 수수께끼를 낼 수 있었던 것도 그에게 그런 자리가 주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술만이 아니라 기회도 필요했습니다. 아무 자리도 없는 사람이 골계를 써봐야 황제에게 닿지 않습니다.

수사학(修辭學)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수사학이란 설득을 위한 언어 기술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립한 분야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요소를 에토스(발화자의 신뢰), 파토스(감정적 호소), 로고스(논리적 근거)로 나눴는데, 골계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활용합니다. 웃음이 파토스를 열고, 비유 안의 논리가 로고스를 전달하며, 그 과정에서 발화자의 신뢰가 쌓입니다. 수사학의 역사를 다룬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설득력 있는 화법은 논리만큼이나 전달 방식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골계열전이 수천 년 뒤에도 읽히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봅니다. 권력자에게 진실을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시대를 가리지 않습니다. 직접 말할 수 없을 때 어떻게 말하는가. 그 고민이 지금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는 것이 이 오래된 텍스트를 여전히 살아있게 만듭니다. 사마천이 영웅들의 이야기 사이에 이 편을 끼워 넣은 이유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역사를 바꾸는 것이 전쟁과 전략만이 아니라 말 한마디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자주 묻는 질문 (FAQ)

Q1. 골계열전은 사기 어디에 속하고,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골계열전은 사기의 열전 부분에 속합니다. 열전이란 개인 인물들의 행적을 기록한 편으로, 골계열전은 그중 재치와 해학으로 시대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모은 편입니다. 가볍게 읽으면 재미있는 일화 모음처럼 보이지만, 각 이야기 안에 담긴 설득의 구조를 분석하면서 읽으면 훨씬 더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Q2. 순우곤의 술 이야기가 실제로 위왕을 바꿨다는 게 역사적 사실인가요?

사마천이 사기에 기록한 내용이기 때문에 당시의 역사적 서술로 볼 수 있습니다만, 고대 역사 기록인 만큼 과장이나 각색이 포함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제나라 위왕이 실제로 즉위 초기의 방탕함을 버리고 강국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는 다른 기록에서도 확인됩니다. 순우곤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마천이 그 인과관계를 의도적으로 연결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Q3. 서문표처럼 강압적인 방식이 골계라고 볼 수 있나요?

서문표는 엄밀히 말해 웃음보다는 역설적 행동을 통해 잘못된 관행을 깨뜨린 인물입니다. 골계의 정형적인 사례라기보다는 기지와 단호함을 함께 보여준 사례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의 방식이 골계인지 직언인지보다는, 사마천이 왜 이 인물을 골계열전에 넣었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 흥미로운 질문일 수 있습니다.

Q4. 골계의 방식이 현대에도 효과적일까요?

직접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비유나 유머를 통해 핵심을 전달하는 방식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다만 어떤 관계, 어떤 맥락에서 쓰느냐에 따라 효과가 전혀 다릅니다. 골계가 통했던 것은 발화자가 이미 어느 정도의 신뢰와 접근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골계열전을 읽고 나서 저는 설득이란 결국 상대방이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순우곤의 수수께끼가 그랬고, 술의 이치가 그랬습니다. 불편한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사기 골계열전을 한 번 직접 펼쳐보시길 권합니다. 웃음 뒤에 담긴 칼날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Yeokg
https://plato.stanford.edu/entries/aristotle-rhetoric/

📌 생각 한 줄

"순우곤은 위왕 앞에서 수수께끼를 냈다.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은 새는 무엇인가. 위왕은 스스로 답했다. 한번 날면 하늘 높이 오르고, 한번 울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골계는 직언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드는 설득의 기술이다. 사마천은 영웅들의 이야기 사이에 이 편을 끼워 넣었다. 역사를 바꾸는 것이 전쟁과 전략만이 아니라 말 한마디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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